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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 20130413

파도와 2013. 4. 15. 20:50

 

해미읍성

 

조선 성종 때 마을을 지키기 위해 축조한 성입니다.

 

높이 5m, 둘레 1,800m로 내부면적이 6만평이나 되는 대규모입니다.

 

성 안에는 정자, 포루, 망루 등이 잘 보존되어 있거나 복원되어 있어 당시의 문화를 읽을 수 있지요.

 

고창읍성과 함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도 원형이 잘 남아있는 읍성으로 꼽힙니다.

 

사적 11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조선말 천주교인들의 박해와 순교가 있었던 천주교 순례지이기도 합니다.

 

사적 제116. 지정면적 194,083, 둘레 2,000m. 현재 남문인 진남문(鎭南門)과 동문·서문이 있고, 성내에 동헌(東軒어사(御舍교련청(敎鍊廳작청(作廳사령청(使令廳) 등의 건물이 있다.

 

본래 해미는 1414(태종 14) 덕산(德山)에서 충청병마절도사영이 이곳으로 이설된 뒤

1651(효종 2) 청주로 옮겨질 때까지 군사의 중심지였다.

 

이 성은 1491(성종 22)에 축성하여 영장(營將)을 두고 서해안 방어를 맡았던 곳이다.

『여지승람』에 의하면, 당시 절도사영은 해미현의 동쪽 3리에 있었으며, 석성으로 둘레 3,172, 높이 15, 우물 세 군데,

군창이 설비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읍지에는 읍성의 둘레가 6,630, 높이 13, 치성(雉城 : 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성벽) 380(),

옹성(甕城 : 성문의 앞을 가리어 적으로부터 방어하는 작은 성)이 두 곳, 남문은 3칸이며 홍예(虹霓 : 무지개 모양의 문)를 틀었고,

2층의 다락을 지었으며, 동문·서문도 3칸이나 북문은 없고, 우물이 여섯 군데이며, 성밖에 호()는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미루어, 조선 초기의 병마절도사영과 읍성과는 별개의 것으로 보이는데,

이 병마절도사영에는 이순신(李舜臣) 1579(선조 12)에 훈련원봉사(訓鍊院奉事)로 잠깐 근무한 적이 있다.

 

해미읍성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읍성으로는 가장 잘 남아 있어서 대표적인 표본으로 삼기 위하여 성안의 민가와 학교 등을

철거하고  성벽의 보수 등 연차적인 보수공사를 실시하였다.

 

, 1974년에 동문·서문이 복원되었고, 1981년 성내 일부를 발굴한 결과 현재의 동헌 서쪽에서 객사(客舍),

현재의 아문(衙門) 서쪽 30m 지점에서 옛 아문지가 확인되었고, 관아(官衙)를 둘러쌌던 돌담의 자취가 발견되었다

 

 

아래는 해미읍성의 이런저런 사진들

 

 


해미읍성안내도

 

 

해미읍성안에 있는 국궁장 한번 쏘았으면 좋을 텐데 바람이 많이 불어 패스~~

 



 

해미읍성입구에 있는 방문인데 산적이 나와 흡사한 것 같아 기념사진 찰칵



해미읍성돌기를 하다가 친구의 기념사진


해미읍성에있는 소나무 숲.... 다른 곳에 비해 규모는 좀 작습니다.

 

 

호서좌영리고 쓰여진 동헌 입구


동헌 모습

 

 

동헌 전체 전경

 

동헌내부


해미읍성안의 호서좌영 앞에 있는 고목

 


 

오늘 무슨 행사가 있는 모양입니다.

남사당패의 어름산이가 리허설 중입니다. 근데 바람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네요

 


 

정스러은 구들장부엌

 


다드미질하시는 할머님들

 


 

벼짚으로 만든 생활용품들

 

옜날옜적의 부츠


옜날옜적의 샌달 ㅎㅎ 짚신

 

 

 

새끼꼬는 방의 모습

 

신기전


신기전의 자세한 모습

 


전에 알았는데 이름이 가물가물가리는 무기...음..

 









 

주막의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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