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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문경새제, 수안보온천, 청주(상단산성등), 미륵사지(익산)

파도와 2011. 2. 25. 17:57

2009년 4월 18일 토요일 덕유산.... 먼지 많고 더운날씨...

 

전부터 벼르고 벼른 덕유산을 드디어 왔습니다..

 

맘 설레며 ........산행을 시작합니다...

 

문제는 부부산행이라 많이 못걸은다는 단점을 남기고

그래도 설천봉, 향적봉, 중봉은 다녀올려고 맘을 먹었는데

향적봉대피소를 도착하니 입산 통제..이이고 내팔자야 바라만보고 가는심정

근데 산불로 인한 입산통제는 가는곳마다 나를 괴롭힙니다..

 

덕유산 우리나라의 산세중 중앙에 위치한지라

천왕봉부터 지리산 능선을 조망할수 있으며

명산을 파노라마로 보는 박물관 같은 곳이더군요.

 

명산임은 틀림없는데 목포에서 가려는 교통이 좀 멀더군요

그래도 익산 장수간 고속도로가 새로 생겨 약 3시간 남짓이면 갈수 있겠더군요

 

특히 산행시간은 국가기밀이니 알려고 하지 마세요...ㅋㅋㅋㅋㅋㅋ

 

아래는 이번 산행사진을 올립니다.,,

 

처음에는 전가족과 함께 숙박하고 이제는 할멈 영감 둘이잔 숙소 

 

곤도라 타기전의 집사람...

 

곤도라가 가야할 곳

 

곤도라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인파.. 

 

중간에 탑승장을 찰칵

 

편애하면 안되니깐 반대편도 찰칵

 

가는길에 겨우살이 (밑에 곤도라 타는곳에 불법채취하면 아주 혼내준다고 프랑카드가 걸렸습니다.)

 

어제 밤에 시원치 않았나 봅니다 한장찍어 달랬더니 숯탱이가 됩습니다.

 

나는 이렇게 예쁘게 잘찍어 주었는데....ㅎㅎ

 

 설첨봉의 건축물 의미는 모름....

 

 내부의 천장 모양

 

 기념사진 

  

 가는길의 고사목 

 정말 자연이란 살아서도 죽어서도 아름다움만을 남기는군요..

 

아래는 호젓하고 예쁜 등산로 

 

 향적봉 이정표


 부부 기념사진 2 

 

 향적봉 안내판 

 

 향적봉 전경

 

 향적봉 대피소

 

 아침부터 내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플랑카드  ㅠㅠ

 

  향적봉에서 대피소 오는 길


대피소에 있는 이정표


울부부의 오늘 아침식사 진수성찬입니다...ㅎㅎ 

 

 멀리 중봉을 바라만 보고...

 

 덕유산에 있는 내내 헬기가 산불예방 방송을 합니다..

 

 저멀리 천왕봉을 최대 망원으로 땡겨보고 

 그래도 집사람은 자기도 저기 같다왔다고 다른사람에게 자랑합니다 ㅎㅎ

그때 다른분들에게는 미안했어도 집사람데리고 천왕봉을 간 것은  정말 잘한것 같습니다...

 

 

 지리산 능선

 

 향적봉에서 내려다 본 설천봉,.,,,,,,,,,,,,,,,,,

 

 하산길 집사람 뒷모습이 예쁘게 보입니다 분홍색 쟈켓입니다..

 

 내려가는 길에서

 

 

 내가 미칩니다...... 그것 조금 것고 벌써 힘들어 합니다. 보이진 않치만 안쪽에 무릅보호대도 이미 했습니다...

 

 

  이리하여 벼르고 벼른 덕유산을 어떻게든 댕겨왔습니다.

 

 중봉을 못가본것이 서운하지만 담에 가기로하고.....

 

  아래는 나제통문

 

 

기념사진

 

              무주구천동 계곡 우리나라에서 가장좋은 계곡임이 분명합니다.

 

 

  토요일오전은 이리 주에서 보내고 이제 문경세재를  향해 고~~~~~~~~~~~~~~~~~

                                                                   ~~~~~~~~~~~~~~~~~우..!!

 

덕유산 산행을 하고 여기 까지 온김에 문경새재로 발길을 잡습니다.

 

때는 2009년 4월 18일 오후 .....

 

선비들의 과거길인 역사적인 장소이며  목포에서는 접근이 정말 힘든코스라

이때 와바야지 하는 맘이들어 여기에 왔습니다.

 

이곳에 와서 보니 문화유적지가 TV드라마 촬영장으로 더 유명해진것 같군요.. 

 

문경새재(聞慶鳥嶺)의 유래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조령산(鳥嶺山) 마루를 넘는 이 재는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유역을 잇는 영남대로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사회 문화 경제의 유통과 국방상의 요충지였다. 새재(鳥嶺)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옛 문헌에 초점(草岾)이라고도 하여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 또는 하늘재, 麻骨嶺)와 이우리재(伊火峴) 사이의 「새(사이)재」, 새(新)로 된 고개의 「새(新)재」 등의 뜻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뒤에 이곳에 3개(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의 관문(사적 제 147호)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 이 곳은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유서 깊은 유적과 설화·민요 등으로 이름 높은 곳이다. 이 곳에는 나그네의 숙소인 원터, 신구 경상도관찰사가 관인을 주고 받았다는 교귀정터만 남아있는 것을 1999년 중창하였고, 옛날에 산불을 막기 위하여 세워진 한글 표석 "산불됴심" 비(지방문화재자료 제226호)가 남아있다.

 

 그리고 역사에 얽힌 갖가지 전설을 비롯하여 임진왜란과 신립(申砬) 장군, 동학(東學)과 의병(義兵)이 남긴 사담(史談)이 골골이 서리어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이 일대를 1974년 지방기념물(제18호), 198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어 전국에서 관람객이 많이 찾고 있는 곳이다.

 

3관문 소개

주흘관(主屹關)-영남제1관(嶺南第1關)

남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숙종 34년(1708)에 설관 하였으며 영남 제1관 또는 주흘관이라고 한다. 정면 3칸(間)과 측면 2칸 협문 2개가 있고 팔작(八作)지붕이며 홍예문은 높이가 3.6m, 폭 3.4m, 길이 5.4m이며 대문의 높이는 3.6m, 폭 3.56m, 두께 11㎝이다. 좌우의 석성은 높이 4.5m, 폭 3.4m, 길이 188m이고, 부속 성벽은 높이가 1~3m, 폭 2~4m이다. 길이는 동측이 500m, 서측이 400m로 개울물을 흘러 보내는 수구문이 있으며 3개의 관문 중 옛 모습을 가장 잘 지니고 있다.

 

조곡관(鳥谷關)-영남제2관(嶺南第2關)

선조 27년(1594)에 충주인 신충원이 축성한 곳으로 중성(中城) 이라고도 한다. 숙종조에 관방을 설치할 때 옛 성을 개축하였으나 관(關)은 영성(嶺城 : 3관문)과 초곡성(草谷城 : 1관문)에만 설치하고 이곳에는 조동문(鳥東門) 또는 주서문(主西門)을 설치하였다.

그후 1907년에 훼손되어 1975년에 복원하였다. 이렇게 복원한 문루를 옛 이름 조동문(鳥東門)이라 하지 않고 조곡관(鳥谷關)이라 개칭하였다. 누각은 정면이 3칸 측면 2칸이며 좌우에 협문이 2개 있고, 팔작(八作)지붕이다. 홍예문은 높이가 3.6m, 길이 5.8m이다. 대문의 높이는 3.6m, 폭 3.56m, 두께 11㎝이다. 좌우의 석성 높이는 4.5m, 폭 3.3m, 길이 73m이고, 좌우의 성벽의 높이는 2m, 폭 2~3m, 길이는 동측이 400m, 서측이 100m이다.

 

조령관(鳥嶺關)-영남제3관(嶺南第3關)

새재 정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선조 초에 쌓고 숙종(숙종 34년 : 1708) 때 중창하였다. 1907년에 훼손되어 육축(陸築)만 남고 불탄 것을 1976년도에 홍예문및 석성 135m와 누각을 복원했다. 누각은 정면이 3칸, 측면 2칸이며, 좌우에 협문이 2개 있으며 팔작(八作)지붕이다. 홍예문은 높이 4.5m, 폭 3.2m, 길이 185m이고 성벽의 높이는2~3m, 폭 2~3m, 길이는 동측이 400m, 서측이 400m이며 대문의 높이는 3.9m, 폭 3.56m 두께 19㎝이다.

 

아래는 문경새재 사진

 

여기도 등산로 폐쇄입니다... ㅠ,ㅠ

 

 선비상

 

팔괘

 

선비상

 

한국의 아름다운 길 중의 하나

 

 

 

 

멋진 절벽 과 나무 그리고 기념사진

 

 문경새재 제 1관문

 이정표

 

  또 아름다운 길

 

철로 만든 공덕비 신기해서 찰칵

 

각종 안내판 시리즈

 

 

 

 

 

세트장 내부 전경들 과 짝퉁 광화문도 있습니다

 

 

 

 

 

짝퉁 광화문 기념사진

 

 

 

 

 

 

어린거위 와 어미거위

 

  

 

 

 

 

그리고 같이 무리이룬 거위들

 

 

 

옛길박물관

  

안사람의 다리컨디션이 좋질 않아 많은 구경은 못하였지만

 

그래도 문경새재를 다녀왔다는 기분만으로 참 즐겁습니다. 

 

아래는 문경새제에 있는 꽃들 

 

 

 

  

   

 

   

 

 

 

 

 

 분수사진

 



때는 2009년 4월 19일 맑고 더운날

 

어제 덕유산과 무주관광하고 문경새재에 들린 후 수안보에서 이번 여행의 2박을 하게 됩니다.

아침 일찍 수안보에서 기상하고  청주로 발길을 향합니다...

청주하면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청주성(상당산성)과 우리의 조상님들의 기술적인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직지라는 금속활자를 구경갑니다.

 

전부터 나는 금속활자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만든 조상님들의 얼을 존경하고 있엇습니다.

 

참 태왕사신기도 여기서 촬영했다고 그러네요..

 

상단산성은 아름다운 성벽길을 운치있게 걸을 수 있는 곳이데요..

집사람의 컨디션이 좋았으면 한바퀴 돌고 익산으로 갔었으면 하는 희망사항이 생기지만

이정도 둘러 본것도 참 기분이 좋습니다.

 

참 청주시민들이 가장 즐겨찾는 산행코스랍니다.... ^^

 

*제1코스(산행거리 3㎞, 약 1시간 40분 소요)      :  우암산순회도로-음료수대-성벽-서문-산성마을-명암약수터

*제2코스(산행거리 4.2 ㎞, 약 1시간 30분 소요)  :  공남문-남암문-미호문-동암문-진동문-동장대-저수지-공남문

 

상당산성 설명

상당산성은 충북 청주시와 청원군과의 경계에 위치한 상당산(492m)에 위치한 산성이다. 상당산이란 이름은 삼국시대에 청주가 백제의 상당현이었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산성의 축성 연대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 삼국사기 열전에 보면 구근이라는 사람이 김유신의 셋째 아들 김원정을 따라가 서원경(西原京)의 술성(述城)을 쌓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성이 상당산성이 아닐까 하는 추측과 '당산성고금사적기'에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이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모두 확실한 것은 아니다.

 

산성은 산의 8부 능선에 4.2km에 걸쳐서 마치 시루삔을 두른 듯한 형태로 존재한다. 오목한 분지를 품에 안고 산허리를 따라 쌓아나간 포곡식(包谷式)산성이다.

 

네모나게 다듬은 화강암으로 외벽을 쌓고 내벽은 자갈과 흙으로 채워 넣고 다짐으로써 성벽 내부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한 우리나라 산성이 가진 전형적인 특징이다.

 

상단산성의 정문인 공남문은 무지개문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무사석(武砂石)을 다듬어 11단으로 쌓았다. 바깥쪽에 옹성이나 적대(敵臺) 등 성문을 보호할 시설이 없는 대신 안쪽에 옹벽을 쌓아 성문을 드나들 때는 반드시 꺾여 드나들도록 하였다.

[출처] 충북 '청주'-상단산성外|작성자 구구

 

우리나라의 원형이 잘 남아있는 조선 중후기의 대표적인 석성이며, 전형적인 포곡식 내탁공법의 성이다, 삼국시대(三國時代) 백제(百濟)의 상당현(上黨縣)에서 유래된 이름인 듯하며 둘레가 4.2㎞,내부면적이 727,276㎡ 이나 되는 거대한 포곡식(包谷式) 석축산성(石築山城)이다.

 

참고.

비밀문:상당산성에는 두 곳의 비밀문이 있는데 이를 암문이라 한다. 동북암문은 동북에서 북상하는 능선이 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만나는 지점 아래에 위치해 있다. 이 암문은 1720년,숙종46년에 축조된 것으로 상당산성 1차개축이 이루어진 후의 일이다.

동북 암문은 서너명이 허리를 숙이고 드나들 정도인데 안쪽으로 빗장구멍을 내어 견고히 하는 한편 유사시에는 곧바로 폐쇄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서북 암문은 최근에 복원한 것이다.

 

아래는 상단산성 사진

공남문. 상당산성의 정문에 해당

 

 

 

 

동장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1992년 복원

 

 

 위로는 공남문에서 진동문으로 이어지는 성벽 길


진동문(동문).동문에서 곧장 내려가면 산성마을임  

 

 

 성벽길 옆에 있는 멋진 벚꽃나무

 

 

 

 

 

 진동문

 울부부의 두번째 아침식사 산성마을의 보리밥,,,,,

     기념사진

 

그래도 기분은 참 좋습니다

 

이번에는 청주의 두번째 시리즈 직지입니다

 

직지를 발견되고 만들어 진곳을 직접와서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직지..........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목판본 (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木版本)

 

종목      : 보물 제1132호

분류      : 기록유산 / 전적류/ 목판본/ 사찰본

수량     : 2권1책

지정일  : 1992.04.20

소재지  : 경기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50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한국학중앙연구원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은 ‘불조직지심체요절’또는 ‘불조직지심체’라고도 부르며, 역대 여러 부처와 고승들의 법어, 대화, 편지 등에서 중요한 내용을 뽑아서 편찬한 것이다.

 

중심주제인 직지심체는 사람이 마음을 바르게 가졌을 때 그 심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백운화상이 고려 공민왕 21년(1372)에 원나라에서 받아온 불조직지심체요절 1권의 내용을 대폭 늘려 상·하 2권으로 엮은 것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크기는 세로 21.4㎝, 가로 15.8㎝이다.

 

간행기록에 의하면 고려 우왕 4년(1378) 6월에 백운화상이 입적한 여주 취암사에서 제자 법린 등이 우왕 3년(1377)년에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한 금속활자본을 바탕으로 간행한 것이다.

 

서문은 1377년에 성사달이 쓴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앞부분에 1378년에 이색이 쓴 서문을 추가하여 간행하였다.

 

흥덕사에서 찍어낸 금속활자본을 다시 목판으로 간행한 이유는 지방 사찰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미숙하여 인출 부수에 제한을 받아 많이 찍어 널리 퍼뜨릴 수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 동일한 판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도 있으나, 이 판본이 인쇄상태가 좋은 편이고 두 개의 서문이 붙어있어 완전한 형태이다.

 

다음은 직지 관련 사진

청주고인쇄박물관

 

 

 

 

직지를 세상에 알린 박병선 박사 지금도 생존해 계신답니다.

 

 

 

 

 

 

 

 

 직지등 각종 유물이 발견된 흥덕사지

 

 

 

 

 

오늘 청주예술제가 있는 날이여서 주차하느라 한창을 헤멧습니다...ㅎㅎ

청소년들이 붓글씨 쓰는 모습이 너무나도 아릅답습니다.

 

직지가 청주를 대표하기는 하나봅니다 가로등에 직지라고 쓰여있습니다.

 

오늘 청주에서 정말 유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직지박물관인 청주고인쇄박물관은 청주예술의 전당과 흥덕성당과 같은곳에 있습니다.

 또 집사람은 유명한 흥덕성당에서 주일 미사를 보는 행운도 뒤따랐습니다 ...

 

흥덕성당

 

 

 


미륵사지... 이번이 두 번째 방문하군요

 

여행 3일째 첫날이야 늦게 목포에서 출발한지라 무주에서 잠만자고

이틀째엔 덕유산 향적봉에 올라보고 멀리 있던 문경새재도 구경하고 수안보에서 이틀째 밤을 보내고

삼일째인 오늘은 상당산성(청주성)과 직지를 구경하고 막내아들이 학교다니는 익산으로 발길을 잡었네요

근처에 미륵사지가 있어 집사람에게 구경을 시켜 주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미륵사지를 향하여 갑니다..

 

미륵사지 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그 넓은 절터를 보며 과거의 우리나라 불심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만듭니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절터인 것 같습니다.

 

여기에오니 일본인 관광객이 상당이 많이 왔고 외국인근로자(아마 파키스탄인 쯤??)도 많이 왔네요.

 

그리고 미륵사지를 처음 왔을 때는 한 4~5층 남았는데 이제 복원을 위한 해체 작업을 많이하여 기초부분만 남았네요..

 

이쯤에서 각설하고 미륵사지의 설명과 사진을 올립니다,

 

 

미륵사지 설명

 

익산 미륵사지 [益山彌勒寺址]

지정번호 사적 제150호

지정연도 1966년 6월 22일

소재지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32-2

시대 백제시대

면적 1338만 4699㎡

분류 사지

 

1966년 6월 22일 사적 제150호로 지정되었으며, 익산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면적은 1338만 4699㎡으로, 마한(馬韓)의 옛 도읍지로 추정되기도 하는 금마면 용화산(龍華山)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추정 규모로는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다. 601년(백제 무왕 2)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무왕(武王)과 선화공주(善花公主)의 설화로 유명한 사찰이다. 국보 제11호인 동양 최대의 미륵사지 석탑과 보물 제236호인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으며, 1974년 8월 원광대학에서 실시한 발굴조사 때 동탑지(東塔址)도 발견되었다. 건물지(建物址)는 백제와 고구려의 유구(遺構)가 복합되어 있다.

 

 

미륵사지석탑 (彌勒寺址石塔)

종목 : 국보 제11호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탑

수량 : 1기

지정일 : 1962.12.20

소재지 :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97

시대 : 백제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익산시

 

백제 최대의 절이었던 익산 미륵사터에 있는 탑으로, 무너진 뒤쪽을 시멘트로 보강하여 아쉽게도 반쪽탑의 형태만 남아 있다.

평면이 4각형인 다층(多層)석탑이었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6층까지만 남아 있어 정확한 층수는 알 수 없다.

기단(基壇)은 목탑과 같이 낮은 1층을 이루었다.

탑신(塔身)은 1층 몸돌에 각 면마다 3칸씩을 나누고 가운데칸에 문을 만들어서 사방으로 내부가 통하게 만들었으며, 내부 중앙에는 거대한 사각형 기둥을 세웠다.

1층 몸돌의 네 면에는 모서리기둥을 세웠는데, 위아래가 좁고 가운데가 볼록한 목조건축의 배흘림기법을 따르고 있다.

기둥 위에도 목조건축에서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재료인 평방(平枋)과 창방(昌枋)을 본떠 설치하였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네 귀퉁이에 이르러서 살짝 치켜올려져 있다.

2층부터는 탑신이 얕아지고 각 부분의 표현이 간략화되며, 지붕돌도 1층보다 너비가 줄어들 뿐 같은 수법을 보이고 있다.

탑이 세워진 시기는 백제 말 무왕(재위 600∼641)대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반쯤 무너진 곳을 시멘트로 발라놓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으나,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되고 커다란 규모를 자랑하는 탑으로, 양식상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충실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이번답사 사진

 

 

 

 울부부 기념사진..(뒷 편에 당간지주의 규모를 보아도 절의 규모가 어느정도인지 실감남니다...)

 

 

 

 새로 만든 미륵사지석탑


거의 해체되고 바닥만 남은 원래 미륵사지석탑  

 

 

 ↑ 무너져 내려 콘크리트로 메꾼 발견당시 원래의 모습 도면

  안내판 

  ↑ 목탑안내판

 

↑ 목탑의 미니어쳐

 

 

↓ 미륵사지의 원래모습 미니어쳐 

 

 집사람도 이렇게 큰 절터는 처음 보았다며 깜짝놀래합니다.,

 

 일요일 오후에도 문화유적 답사는 계속됩니다,,,, 나중에도 이런 여행을 할 시간 있어야 할건데..

 

 

 

 

  밑에는 울 막내를 사준 익산의 한 식당의 샤브샤브

  샤브샤브집인데 맛은 좋습니다... 식당이름이  채선당... 밑에 물수건에 식당이름이 있습니다..

 

  울막내 4인분을 먹습니다...... 추가또 추가 

 

 

 

 

  어머니는 막내를 가장 아끼는 모양입니다.... 울 막내가 저리 컷으니 나도 조금 있으면 손(자,녀) 바야지....

손자 이야기가 나와서 인데 미륵사지에서 어떤 꼬마가 할아버지하고 나를 부릅니다....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